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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고] 보행자, 또 하나의 멈춤신호

< 기고문, 한국일보(’21. 4. 5.(월)) 게재 >

보행자, 또 하나의 멈춤신호

황 성 규(국토교통부 제2차관)

본래 길의 주인은 사람이다. 그런데 ‘빨리빨리 문화’가 교통에도 스며들며 자동차가 교통정책의 중심이 됐다. 그 결과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사람과 자동차는 누가 먼저 지나갈 것인지 눈치싸움을 벌이곤 한다. 하지만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단 11%의 운전자만이 보행자에게 통행을 양보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3,081명 중 보행자는 1,093명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했다.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를 발표하는 OECD 회원국 28개 나라 중 27위라는 성적표는 대한민국 교통안전 수준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보행 사망자의 57%가 길을 건너던 중에 발생했고, 65세 이상 어르신의 비율이 56%나 된다는 점 또한 큰 문제다.

이제는 길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기존의 자동차 중심 통행정책에서 벗어나 보행자 중심으로의 개선이 긴요하다. 이에 정부는 올해를 보행자가 최우선으로 보호받는 교통문화와 시스템 정착의 원년으로 삼아 맞춤형 교통안전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먼저, 4월 17일부터 도심부 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50km로, 어린이 보호구역 등은 시속 30km 이하로 조정하는 ‘안전속도 5030’을 전면 시행한다. UN 권고사항이기도 한 이 속도하향 정책의 시행으로 독일, 호주, 덴마크 등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률이 12∼24%까지 감소되는 성과가 있었다.

횡단보도가 보행자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프라 개선에도 나선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건너려고 할 때’에도, 그리고 자동차가 교차로에서 우회전 할 때에도 운전자는 반드시 일시정지를 해야 한다. 만일 이를 위반할 경우, 자동차 보험료 할증 등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 추가로,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이면도로에서도 보행자에게 통행 우선권을 부여하고, 보행약자의 특성을 반영한 ‘사람 중심 도로설계지침’도 곧 제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안전을 지키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과 실천이다. 도로 곳곳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만, 매년 500명 이상이 무단횡단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는 차량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행자 우측통행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걷거나,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로 무심코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자동차 통행을 인지하지 못해 생기는 사고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안전은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안전운전과 교통법규 준수라는 기본 중에 기본을 실천하며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문화가 자리 잡을 때 우리의 안전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정부의 노력에 국민의 실천이 더해져 교통사고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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